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영화 그린 북, 끝나지 않은 인종차별
가슴이 참 먹먹합니다. 경찰 데릭 쇼빈은 비무장 상태였던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무려 8분 46초 동안 짓눌렀고, 숨을 쉴 수 없었던 조지 플로이드는 결국 질식사로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많은 시민들이 분노하고 아파하며, 미국 각 지역에서는 인종 차별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다"는 조지 플로이드의 간절한 외침은 결국 그가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희생된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돌아보며 가슴 한 켠이 먹먹해졌습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는 세상, 2020년 현재에도 여전히 우리는 이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영화 '그린 북'에 담긴 시대상
영화 '그린 북'은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1962년 미국의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제목인 ‘그린 북’은 흑인과 백인의 차별이 분명했던 시절, 흑인이 여행할 때 묵을 수 있는 숙소나 식당 등을 정리한 일종의 흑인 전용 가이드북을 지칭하는 용어로, '그린 북'의 존재 자체부터가 인종차별의 산물인 셈입니다.
영화는 천재 흑인 피아니스트 돈 셜리(이하 '셜리 박사')가 미국 남부로 8주 간의 콘서트 투어를 떠나기 위해 백인 운전사 토니 발레롱가(이하 '토니)를 채용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미국 남부의 인종차별은 매우 심각했기 때문에 돈 셜리는 자신을 보호해 줄 운전사이자 보디가드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 일을 맡게 된 토니 역시 높은 임금을 보고 제안을 수락했을 뿐, 사실 인종차별이 뿌리 깊숙이 내면화된 인물이었습니다. 자신의 아내가 집 수리를 위해 방문한 흑인들에게 음료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고, 토니가 흑인들이 사용한 컵을 휴지통에 버리는 장면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영화 초반에 셜리 박사와 토니는 흑인과 백인, 상류층과 하류층, 예술가와 노동자 등 완전히 다른 특징과 성격, 그리고 가치관 차이 때문에 계속해서 부딪히게 됩니다. 셜리 박사와 토니의 사고방식, 사용하는 어휘, 생활 습관은 비슷한 점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던 셈이죠. 너무나도 다른 둘이지만, 8주라는 시간을 함께하면서 이 둘의 관계에 조금씩 변화가 찾아오게 됩니다.
누구보다 자상하고 젠틀하며, 품위를 중시하는 셜리 박사는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온갖 수모와 차별을 겪게 됩니다. 무대 위에서는 존경받는 연주자이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공연장 화장실도 마음대로 사용할 수 없고, 고급 호텔의 무대 위에서 연주는 할 수 있지만 레스토랑에서는 식사를 할 수도 없었습니다. 또한, 흑인에게만 적용되는 통금 때문에 밤에는 운전을 할 수도, 돌아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이런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도 셜리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You only win when you maintain your dignity."
(오로지 품위를 유지할 때만 이길 수 있는 겁니다.)
이렇게 단단한 심지를 가지기까지 셜리 박사는 얼마나 많은 차별을 겪고, 얼마나 깊은 슬픔을 이겨냈을까요. 꿋꿋하게 숱한 어려움을 이겨낸 셜리 박사였지만, 그런 그에게도 참을 수 없을만큼 힘든 시련이 다가오고 맙니다. 아래 장면에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던지요.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토해낸 그의 울분에 가슴이 저렸습니다.
"So if I'm not black enough and if I'm not white enough, then tell me. Tony, what am I?"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다면, 그럼 나는 뭐죠?)
흑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 의식을 가지고 있던 토니 역시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셜리 박사의 아픔을 이해하고 공감하게 됩니다. 영화는 주로 셜리 박사가 겪는 수모와 어려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셜리 박사 역시 토니를 통해 변화하는 부분도 묘사됩니다.
단 한 번도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을 먹어본 적도 없고 손으로 음식을 먹는 행위를 용납할 수 없었던 셜리 박사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지닌 토니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인종차별'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지만, 중간중간 깨알같은 재미 요소 덕분에 130분이라는 비교적 긴 러닝타임 동안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습니다.
여러 장면 중에서도 아내에게 쓴 토니의 편지를 셜리 박사가 첨삭(?)해주는 장면은 꽤나 유쾌했습니다. 토니의 아내도 생전 처음 받아보는 세련된 편지에 감동을 받게 되죠. 이렇게 굵직한 몇몇 사건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변주가 반복되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사건을 클라이막스로 영화는 마무리됩니다.
영화 속에서 셜리 박사는 편견을 깨기 위해 남부 투어를 행하는 용기를 내었고, 토니는 이 여정을 함께 하며 그의 편이 되어주었습니다. 영화의 결론은 훈훈했지만,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보며 현실 세계는 여전히 녹록지 않음을 여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한 걸음씩만 더 서로를 이해하고,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BLACK LIVES MA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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